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의 생계와 복지 문제는 우리 사회가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에는 돌봄서비스보다 ‘직접 노동’을 택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의 복지정책이 충분하지 못한 틈을 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터로 나서는 노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돌봄서비스와 직접 노동이라는 두 선택지를 비교하며, 각각의 장단점과 사회적 의미를 짚어본다.
돌봄서비스의 현실과 과제
노인을 위한 돌봄서비스는 그 자체로 복지국가의 지표가 된다. 일정 연령 이상의 고령자가 스스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울 경우, 정부와 지자체는 장기요양보험제도, 복지센터, 방문 요양 서비스 등을 통해 일상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이 제도의 목적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는 데 있다.
돌봄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시간’이다. 노인이 더 이상 밥을 짓거나 병원에 혼자 가지 않아도 되며, 씻거나 걷는 일조차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안정감은 생애 마지막 시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족의 부양 부담도 줄어든다. 요양보호사가 대신해주는 시간은, 자녀들에게는 숨 쉴 틈을, 노인에게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대화 한 마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현실은 이 이상적인 그림과 거리가 멀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고, 서류상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불편한 몸이라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비스는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도 심각하다.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방문요양 인력을 구하기조차 힘든 경우도 많다.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돌봄서비스는 일정 시간 이상 제공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하루 2~3시간 서비스로는 하루 24시간의 삶을 메울 수 없다. 결국 그 시간 외에는 가족이 맡아야 하는 구조이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자녀나 배우자에게 전가된다. 이 모든 이유로 많은 노인들이 돌봄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노인의 직접 노동, 선택일까 생존일까
“일하는 게 낫다. 그래야 먹고살지.”
노인 노동을 취재하다 보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70대 중반의 김 모 할아버지는 새벽 6시에 공원에 나가 쓰레기를 줍고, 오후에는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일을 한다. 한 달 수입은 40만원 남짓.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도 쉬지 않는다. “돌봄? 받으면 좋겠지. 근데 그건 나 같은 사람한텐 해당 안 돼.”
이처럼 많은 노인들이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높다. 전체 노인의 절반 가까이가 상대적 빈곤 상태에 있으며, 기초연금이나 장기요양보험 같은 제도로는 최소 생계 유지조차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독거노인의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사회적 고립 속에서, 노동은 어쩌면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되는 끈이기도 하다.
직접 노동의 장점도 있다. 수입이 생기고, 규칙적인 일과가 생기면 건강에도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부 노인들은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자발성’이 전제될 때 가능한 얘기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노인 노동은 자발적이라기보다 ‘강제’에 가깝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기에, 몸이 불편해도 나서야 하고, 하루 쉬면 그만큼 지출이 막막해진다.
노인 일자리는 대부분 단순하고 고된 육체노동이다. 교통 정리, 청소, 공공근로 등으로 대표되는 이런 업무는 신체적 위험을 동반하며, 충분한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60세 이상 노동자의 사고 발생률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하루 3시간 일하고 받는 돈이 2~3만 원 수준인데, 그로 인해 병원비 수십만 원이 발생한다면 노동은 오히려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들 뿐이다.
선택의 기준은 ‘존엄’이어야 한다
돌봄서비스와 직접 노동. 이 둘은 단순히 복지 정책의 선택지라기보다는, 노인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가치 판단이다. 선택의 기준은 효율이나 비용이 아니라 ‘존엄’이어야 한다. 70세가 넘은 노인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회를,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책은 보편성과 융통성을 함께 가져야 한다. 건강이 허락되는 노인에게는 노동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이 사회 참여와 자존감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동이 부담이 되는 노인에게는 충분한 돌봄과 소득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 그 경계가 불분명하고, 어느 쪽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노인 일자리 확대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양적 확대에만 집중하면, 단기적인 ‘수치’ 개선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실제 삶은 변하지 않는다. 돌봄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지역 간 격차를 줄이며,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이 병행돼야 진정한 복지로 기능할 수 있다.
노인의 삶은 단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문제다. 이는 노인의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의 문제다. 지금의 40대, 50대 역시 몇십 년 후 그 자리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돌봄과 노동, 그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더 이상 돌봄과 노동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한 노인에게는 의미 있는 일자리를, 돌봄이 필요한 노인에게는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는 이중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뿐 아니라,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부양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사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노인의 직접 노동이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선택지가 강요가 아니라 ‘권리’여야 한다. 돌봄서비스도 의무가 아닌 ‘권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생계와 복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노인들이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도록, 사회는 더 넓고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